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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12, 2020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자 - 매일경제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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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43] 어느 날이었다. 백화점 식품관을 지나다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체리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자연스레 가격에 눈길이 갔다. 5000원이었다. `그래, 이 정도라면 가격도 괜찮네` 싶어 한 봉지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1만8000원입니다` .으음? 뭐라고요? 일단 계산을 마치고는 찜찜한 기분을 안고 다시 가격을 확인하러 체리를 판매하고 있던 매대로 향했다. 그럼 그렇지, 5000원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가격표 아래 작은 글씨로 `100g당`이라고 쓰여 있었다. 달콤새콤한 체리에 홀려 작은 글씨를 스치고 지나간 내 탓이지 하며 저녁값보다 비싼 체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아, 억울하게도 이 체리는 너무, 너무너무 맛이 있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이런 데 쓰는 걸까. 조금 수정을 해야 하지 싶다. `보기 좋은 떡은 먹기도 좋지만 비싸다.`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진 작가 무레 요코도 에세이집 `지갑의 속삭임`에서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 적이 있다. 친구 생일을 맞아 7~8명의 친구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가져와 파티를 하기로 했단다. 무레 요코는 월남쌈에 도전하기 위해 파티 당일 치구들과 차를 타고 도심에 위치한 유명한 고급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확실히 신선해 보이기는 했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비쌌다. "이런 걸 사다니, 엄청나게 죄책감이 들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를 반복하며 생일상 장보기를 마쳤단다.


고급 슈퍼마켓에서 산 양상추와 부추, 새우에서 싱싱하고 향긋한 채소향이 나, 월남쌈을 만들 때부터 식욕이 솟구쳤다고 한다. 이날의 요리는 평이 무척 좋아 친구들에게 다음에 또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한 달 후 그때의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다시 식사를 하게 되며 월남쌈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축하 파티가 아니라 근처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조달했다. 순서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는데 완성된 월남쌈의 맛은 전혀 달랐단다. 지난번 극찬하던 친구들도 "이전 것과는 전혀 다르네"라고 떨떠름한 평가를 내놨다고 한다. 고급 슈퍼마켓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받는다고 여겼지만 확실히 질이 다르더라며 그는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일전에 `일점호화주의`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오히려 간절히 원하는 물건에 충분히 `사치`를 하면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사고자 하는 욕망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로 갖고 싶은 물건을 사지 않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마구 사 버릇한다면 절대 물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음식, 좋은 식재료에 대한 부분도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저렴한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보다 소량이라도 좋은 식재료를 구입해 사용했을 때의 만족도가 더 크다는 사실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본다면 경험으로 알게 된다. 꼭 백화점이나 고급 슈퍼마켓에서 산 과일만 더 질이 좋고 맛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마트에도 신선한 재료, 좋은 품질의 식재료는 있다. 다만 양이 적고 가격이 더 비싸 늘 망설여진다. 그리고 (내 경우) 대부분 선택의 기로에서 싸고 양 많은 재료를 고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대량으로 구입한 식재료는 우리가 먹기에는 너무나도 많다. 조금 사용하고 남은 재료는 냉장고 신선칸에 차곡차곡 쌓인다. 며칠이 지난 후에는 신선코너에 신선하지 않은 야채들이 본연이 향기와 색을 잃은 채 자리하게 된다.

같은 가격이지만 양이 더 적은 재료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백화점에서 샀던 체리는 신선칸에서 하루 이상 머물지 않았다. 300g을 조금 넘긴 적은 양이기도 하지만, 비싸게 산 체리가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는 꼴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틀간 두 번에 걸쳐 아주 맛있게 먹은 그 체리는 모두 우리 가족의 위를 즐겁게 했다. 만일 대형 할인마트에서 같은 가격의 체리를 1㎏ 구입했다면 그들을 모두 먹어 치울 수 있었을까. 대식가가 아닌 우리 가족들은 체리 1㎏을 당연히 다 먹지 못했을 것이다. 이틀간 체리를 먹고 나서는 분명 다른 과일을 찾아 또 마트에 갔을 것이다. 그새 반짝이던 체리들은 절반 이상 냉장고에서 시들해졌을 테고, 결과적으로는 500g을 같은 가격에 구입했어도 우리가 먹은 양은 같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왕 맛있는 음식은 맛있게 먹어보자. 좋은 재료를 필요한 양만큼만 구입하는 것은 절대 사치가 아니다. 이를 알면서도 역시나 싸고 양 많은 음식에 먼저 손을 내미는 나를 위한 주문이기도 하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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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2, 2020 at 01:0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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